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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프랜즈 와 봉사단 후배님 힘내세요
작성자 박** 작성일 2026.01.19. 조회수 3
월드프랜즈 와 봉사단 후배님 힘내세요
트럼프가 왜 USAID에 지원을 안하겟다고하고 요새는 피스코페밀리가 연결이 되었느지 웃습니다
26.01.19 0800l박향선na4amich
검토 전이 글은 생나무글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부탄에서 돌아온지 얼마안되어 나는 부탄에 연락을 했던가 누군가에게 연락을 해서 그 주소에 대전집주소와 서울에 아현동옥탑에 주소을 적어 보냈다.스위스친구였는지 일본인 친구였는지 기억은 안난다.

서울에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부탄을 검색해보고 부탄신문인 kunsel을 검색해보는데 검색이 안되었다.한 30분이 지나도 인터넷상에는 나오지 않았다. 난 한국에 살면서도 내가 부탄이라는 나라에 갔다온것이 꿈만 같았다. 어쩔때는 지도상에 없는 나라에 갔다온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들었다.이력서을 내기 위해 UNV경력을 증명할 수 있는 경력증력서을 떼러 UNDP서울 사무소을 찾아갔다.그곳에서 경력증명서을 떼주면서 부탄에서 노르부라는 사람이 다녀갔다는 이야기을 해주었다.

부탄을 다녀온지 1년이 지난 시점인가 정확하지는 않은데 신문에서 속초에서 열리는 무슨 박람회인가을 갔다.아니 부탄다녀온 후 그다음에 봄인가 부탄에서 참석한다고 해서 갔나 엠네스티라는 인권NGO였다. 부탄의 인권문제보다는 부탄의 수공예품등을 전시하고 그자리에 놀랜것은RNRC 유시팡에서 같이 근무한 카운터 파트너인 게장초모의 여동생이라고 밝힌여자애가 와서 영어로 이야기 하고 있었다.나에 대해서 소개하고 연락처을 주었던가만나고 다시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기분이 안좋았던지 핫도그 하나을 먹은 것이 채해서 고속버스을 타고 오면서 두통이 생기고 해서 토을 할려고 해서 어디도모르는곳에서 강원도에서 내려서 토을 햇다.

더이상 아파서 움직일수가 없어서 그곳의 조그마한 마을읍내인가에서 여관에 들어가 갓다. 토요일인지 일요일인지 병원도 없어서 자다가 여관의 주인에게 가서 바늘을 달라고 해서 손가락을 다 땄다.그여관에는 이상한 것은 덩치가 큰 여자들이 여러명이 앉아 잇었다는 것이다.그리고 그 여관에서 자고 서울에 와서 죽이라도 여동생에게 얻어먹을까 하고 연락을 했는데 굉장히 안좋게 그냥 대전으로 가라고 했다.

그리고 대전에 와서 며칠을 가만히 누워 있었다. 그리고 몇년이 흘러서 윤병태라고 조선대학교을 나오고 부탄에 1990녀대 초반에 궁도코치로 있던 분과 연결이 되었다. 부산아시안게임인가 가 계기가 되어 다시 부탄과 연결이 되어 사업을 시작했다고 나와 같이 해 달라고 햇다.

대전고속버스터미널로 찾아와 2층 커피숍에서 만났다.넓은 커피숍이지만 그당시에 고속버스터미널은 사람들을 만날 장소가 마땅한 곳이 없었다. 윤병태는 순천사람으로 만나서 이야기하길 자식들이 국민학교인가 선생을 하고 다 커서 사업을 할 수있다고 이야기 햇다.한데 집안이 남동생들이 이혼을 해서 조카을 돌보는 입장이었디.

좀 지나서 신문에서 보니 청주에서 세계태권도선구권대회가 열린다고 해서 찾아갓다가 만나지도 못하고 돌아왔다. 그때 운병태의 동생인가 친척이라고 했는데 나에게 뭐라고 햇냐면 지금 애들을 데리고 식사을 하러간다.애들을 캐어하러면 돈이 얼나나 드는 지 아냐며 이야기 하고 갔다. 부탄의 태권도 선수단은 보지도 못했다. 태권도 선수권대회에 참석한 선수단중에는 실내체육관복도에서 전기밥솥에 밥을 해와서 먹는 외국인 어린 선수들의 모습도 보았다.

그래서 제안했다. 체육대회에 참석하는 외국선수단과 자매결연을 맺어서 이들을 돌봐야 한다고 말이다. 부탄에 있을때인가 언젠가 이야기을 들으니 지역의 태권도 협회인가 태권도 학원에서 돈을 후원해서 무슨 행사인가 사람이 왔다갔다.그래서 의아해 한적이 있다. 다른나라에서 온 선수들도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에 참석은 햇지만 그나라의 네셔널팀은 아닐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햇지만 나는 시스템을 모르니 할 말이 없다.

나중에 윤병태가 이메일인가로 연락이 되어서 부탄에 샤캄이 먹고 싶으니 샤캄을 구해 줄수있냐고 물으니 그러겟다고 했고 서울에 올라갔다. 오피스을 보여주면서 그동안에 있었던 일을 잠깐이야기하고 유시팡RNRC에 전통 약초팀을 한 사람을 만났는데 인삼종자을 구해 달라고 해서 서울 종로 5가에서 종자을 사서 짐가방에 넣어서 부탄을 가서 그사람에게 전달헤주어 부탄에서 인삼을 재배했다고 이야기해주어 걱정이 좀 되었다. 나중에 병충해나 연작문제등 한국과 기술협력이 가능할 까 싶었다. 나는 지금은 모른다.다른 부회장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물주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거만했다. 윤병태는 그당시에 부탄명예대사였다.

나는 윤병태에 대해서는 내가 1997년인가 들었따. 당시에 부산사람인 궁도코치가 한국에서 부탄에 도착해서 도와주는데 그사람이 그랫다. 부탄에서 그전에 궁도코치 한 사람이 있다고 해서 한국궁도협회에서 알려주어 순천까지 가서 윤병태을 만나고 왔다는 것이다. 아 그래서 사람에게 인사을 잘하는 구나 생각했다. 솔직히 내가 부탄에서 술을 안마신 원인중에 하나는 이 윤병태씨라는 이야기을 들어서다 그때는 이름을 몰랐다. 한국인 궁도치가 있었는데 술을 마시고 싸움을 하고 햇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척 외로웠나보다 생각을 했다. 그리고 조심했다.

한데 나는 부탄에 가기전에 한국청년해외봉사단에서 경기도 이천유네스코 연수원에서 국내훈련을 할때 그곳소장이 부탄에서 일을 한적이 있다는 이야기을 들은적이 있다.강대근이라고 내가 같이 봉사단 파견을 나갈때 코바 동기인 박미라씨가 이야기을 많이 하고 강대근씨와 훈련원에서 이분과 이야기도 한것으로 안다. 부턴애 나가기전에 만났어야 했는데 만나지 못하고 나갔다.

아마 한편으로는 나을 부탄에서 도와준 사람들이 이 강대근씨와 같이 근무한 사람들은 아니었나 싶다. 한데 아무도 이 강대근씨에 대해서 이야기을 나에게 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언뜻 비추기을 기획원에 한사람이 이야기을 잠시 했는데 그냥 스쳐 지나갓다. 그리고 한국인이 부탄에서 여자아이을 입양해 갔다는 이야기을 하며 결혼도 안한 나에게부탄에을 입양하라고 했다.그래서 나는 아직 결혼도 안햇다고 이야기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한겨울에 어던 스님인가가 한국에 간다고 글을 써달라고 햇다. 서울에 용인에 있는 절이었다. 부탄에는 가끔씩 한국에서 스님들이 다녀간다고는 하는데 연락이 온 적은 없다.부탄국립도서관에 가니 대전에서도 어느 스님이 왔다갔다고 방명록에 쓰여 있었다.

보통 외교로 오는 사람이거나 KOICA을 통해서 오는 경우는 인도대사관등에서 먼저 연락이 온다. 한국에서 사람이 간다고 ..처음에는 원주에 상지대교수인가 올때는 대사관에서도 연락이 오고 교수가 개인적으로 현지인신물로 무엇을 가져가야 할지물어와서 양말을 가져오라고 했다. 그곳은 남자들이 고라는 마고자같은 옷을 입는데 양말을 무릅까지 신는다. 그때 긴양말이라고는 이야기을 못햇다. 수도작파트에 유시팡RNRC직원과 농업성에도 같이 왔다갔다 하면서 방문스케줄도 만들었다. 그러면서 이야기을 들으니 완디 포당에 한국에 연수갈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한국연수을 안보냇다고 이야기 했다.지역에서 있는 일을 사람들은 이야기 해주엇다.왕디포당에는 AIT가 있엇고 스위스에서 퇴직하신분이 와서 농업직 교수을 하고 있었고 다른 나라 봉사단들도 있었따. 그리고 그당시 부탄왕의 와이프들의 고향이 완디포당이었다. 부탄왕의 부인의 아버지는 완디포당에 부유한 상인이었다고 한다. 종종사람들은 왕비에대한 이야기며 첫쩨왕자와 둘쩨 왕자이야기을 햇따. 셋쩨 왕비가 아들을 먼저 나았다고한다. 그리고 첫쩨 왕비가 아들을 늦게 나았는데 당시에는 사람들이 둘쩨 왕자에 호감을 느낀다는 이야기도 했었다.내가 있을때 첫째 왕자는 고등학생으로 17세인가 했는데 IMF이후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었다.

불가리아인가에서 온 UNV여자의사에게 딸이 하나 있었는데 왕자와 같은 학교에 다니는데 이딸을 집으로 초대을 해서 이 의사는 딸과 궁에 간다고 이야기 하곤했었다.

이런 저런 생각에 kova에 제안을 했다. 봉사단활동을 하면서 어찌 내 나이또래만 대하겟습니까결혼해서 자식이 있으면 그자식의 같은 반 친구인 부모님들이 초대을 합니다. 몽골UNV의사에게는 딸이 한명이 있었습니다. 오비꼬라고 제가 귀여워햇어요. 집에 모임에 오면 이 산부인과의사가 딸을 데리고 오면 그녀는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 하고 제가 가끔식은 그녀의 딸과 이야기도 하고 종이가자르는 핑킹가위로 종이도 오리고 좀 놀아주니까 나중에 이 몽골의사는 자기가 딸을 혼자두고서 나가기가 참 힘이 들다. 자기의 딸을 봐줄수없겟느냐 하는 거예요.나도 일을 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부탄은 병원이 한국처럼 하루종일안해요. 오후 3시까지 인가햇거든요.부탄국립병원원장의 딸이 몽골의사딸과 비슷한 연령대 였어요.자주 어울리는 것 같았고 . 내가 부탄에 도착하고서 얼마안되어 부탄 JOCV코디네이터와 몽골의사와 함께 부탄국립병원원장집에 초대을 받아간적도 있었어요.가두라는 원장으로 태국에 연수시에 가족이 함께 갔다고 합니다. 부인이 남편에 비해서 학력이 낮았는데 외삼촌이 옆에서 살림을 거둘고 있었어요.그당시에 부탄병원에서 병을 못고치면 캘커타에 병원으로 간다고 사람들이 이야기햇습니다.부인은 아직 어린나이 같은데 아이가 세명이나되었고 잠쇼라는 남아을 키우느라 힘들어 보였지요.

몽골UNV는 나에게 국제 공무원은 5년을 일을 한다고 이야기을 해주었고 임기을 연장하라고 이야기을 햇엇는데 나는 혼자서 좀 힘들었어요.그녀는 오비꼬와 이야기도 하면서 지냇고 병원에 다른 UNV도 잇었는데 나는 나중에 한국인 궁도코치와 태권도 코치가 왔지만 왠지 부탄생활이 더 어려워?거든요.그리고 이야기 하는 것도 달랐고요.

한국에 돌아와서 대전에서 어느 여행사 통역가이드로 일하는데 월간 조선을 보고 궁도코치인터뷰가 나와서 부탄에 연락했는데 연락이 안다았는지 답장이 없었어요.부탄올림픽위원회인가 주소을 그렇게 쓴 것 같네요. 장리미탕이라는 곳에 체육협회가 있었는데

한국에서 가끔식 소식을 보면 부탄소식이 잘못나와도 그냥 넘어 갔었습니다. 그곳에 축구코치도 파견이 되고 한국인들도 나가서 사업을 하나보는데 부탄사람들은 낮잠을 안자고 굉장히 근면합니다. 남에게 그냥 무엇인가을 받지을 않아요. 아이들도 그렇고..

방글라데시와는 상당히 다르고 경계을 합니다. 그곧 그럴 것이 나중에 카운터 파트너의 아야기을 들어보니 시킴이 인도에 복속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을 햇어요
그리고 부탄사람이라고 생각해서 키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마세요. 그나라에서 전경력부회장이 자기 미국UNV며느리와 저을 불러서 식사을 하는데 그분의 와이프는 다른 부탄 사람처럼 작지가 않고 굉장히 컸어요. 참 얌전히 바닥에 앉아서 식사을 하더라구요.그래서 제가 의자에 앉아서 식사하는 것이 좀 불편했어요.우리나라의 가부장적인 문화라고 생각을 햇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부탄은 재산을 딸이 상속을 받는다고 합니다.아들은 밖으로 나간다는 거예요.하진만 ㄴ네팔리들은 아들을 더 중시하고요.그래서 그런지 부탄의 여자들은 참 대단하고 가만히 봐도 인도여자들은 배우거나 상류층여자들은 굉장히 당당한 것 같아요.

서남아시아가 다 그런이유에서 인지 방글라데시도 정치적으로 여자들이 당수이고 파키스탄에 부토는 여성으로 수상이 되었지요.인도도 여자들이 대단해서 여자가 이끌고요.우리어머니가 그러더라구요. 한국에도 규방문화이야기 하지만 양반가의 안방마님 위세가 대단해서 남편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했다고 말입니다.

페이스북으로 유시팡RNRC 에서 같이 근무햇던 케장초모가 연결이 되었어요.30이란 세월이 벌써 흘렀네요.

나에게는 봉사단을 다녀온 경력외에는 이렇다 할 것이 없고 조카들을 돌보며 동네 인터넷방에서 정부기관등에 제안을 시작했을때는 그것이 보이지 않은 재산이 된다는 것을 생각지 못했습니다.

한떼는 방글라데시에서 부탄까지 고속도로가 생기었다는 기사을 언뜻보고 나도 저 고속도로로 부탄까지 해서 네팔까지 여행을 갈까 생각도 했지만 저는 대전에서 부산까지 고속버스타고 여행가기도 힘든 상황입니다.

언젠가 보니 부탄영사관도 서울에 있더라구요.처음에는 핸드폰을 들었다가 이런 저런 생각에 전화을 안햇습니다.

제가 대전인터넷신문에 나간지 얼마 안되어 부탄대사가 대전에서 부탄과 한국외교수립 30주년행사 한 것을 대전지역지에서 보았네요.그리고 지지난해 방글라데시 소요사태가 일어나기전에 방글라대시 여자 대사가 대전상공회의소을 방문해서 사진도 찍었더라구요.

정부에서 다 연결해서 일을 할려면 국제협력단에서 월드프랜즈봉사단을 파견할 이유가 없습니다.청춘을 보내고 경조사비로 개인봉사활동비에서 외국인들에게 쓰고 외국인들에게 음식해서 식사대접하고 일을 하면서 좌중우돌하고 ....그들도 시간이 지나고 보니 믿고 사업할 사람이 필요햇떤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이 듭니다..

가끔씩은 생각합니다. 그 많은 시간 왜 나와 연결이 안되고 나는 자꾸 직장에서 잘리는가전화기을 의심도 해보고 주소가 혹시 라는 생각도 했는데 그전에 살던 집은 부서?더라구요.그리고지난해에 누군가 전화을 해서 알려주었어요. 집전화가 부동산으로 되어있다고...지지난해 11윌인가는 밖에서딸이 전화을 안받아 집전화로 전화을 하니 어던 여자가 계속전화을 받고 있다가 어떤 남자가 전화을 받고요.
이메일에서는 외국인 이메일이 사라지고 누군가 제 이메일을 보고 있는것인지 말입니다.모바일폰에 페이스북제주소가 글쎄 음성군으로되어 있어서 정정할려고 페이스북에 연락을 햇는데 연락이 아되고 있었어요.

부탄에서 돌아와 게장초모와 연결이 되었더라면 합니다. 그때 분영히 엠네스티엔지오의 부스에 서있던 게장초코의 여동생이라고 이야기을 햇거든요.여동생이 이야기을 안햇을까요.세삼스럽게 세월이 흘러 페이스북에 연락이 닿아 있어 놀랫습니다.남편이 여행사을 할려고 준비한다고 해서 갑자기 국내소개되어 있는 여행사 정보을 보니 좀 엉터리라는 생각이 들어 그래도 적어봅니다.

UNVVSOJOCV캐나다우육협회신젠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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